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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칼럼] 왜 하나님은 악을 그냥 두시는가? (하박국 1:1-11)

knowledgeplatform100 2026. 6. 25. 10:59

왜 하나님은 악을 그냥 두시는가? (하박국 1:1-11)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시간표와 섭리를 봐야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합 1:2)


들어가는 말

우리에게 하박국서는 낯설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어린 시절부터 한 찬양을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합 3:17-18)

 

그러나 대부분은 이 찬양이 어떤 시대적 절망 속에서 불려졌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하박국서는 단순한 예언서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라는 인류 최대의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합니다.

  • 왜 악인이 형통하는가?
  • 왜 정의는 늦게 오는가?
  •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가?
  • 왜 기도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가?

하박국은 이 질문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정직하게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질문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한 선지자의 고민이 아니라,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1. 믿음은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합 1:2)

 

하박국은 불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간 사람입니다.

신앙은 질문이 없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질문했습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갑니까?" (출 3:11)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습니까?" (삿 6:13)

 

다윗은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 13:1)

 

예레미야도 질문했습니다. 욥도 질문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위의 예수님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라고 외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질문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침묵보다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큰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하박국이 보는 세상은 하나였습니다.

유다가 타락했습니다. 폭력이 가득했습니다. 정의가 사라졌습니다. 법이 무너졌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다른 시야를 보여 주십니다.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 것이라." (합 1:5)

 

하박국은 유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계사를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현재만 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보십니다. 우리는 한 사람만 봅니다. 하나님은 열방을 보십니다.

 

우리는 오늘의 고난을 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구원을 보십니다. 

신앙은 문제의 크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야를 배우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악까지도 당신의 섭리 안에서 사용하십니다.

이 부분이 하박국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갈대아 사람을 일으키리라." (합 1:6)

 

유다는 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십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악을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악을 도구로 사용하시되 악의 편에 서지는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전체가 이것을 증언합니다.

요셉

형들의 악함

↓

애굽의 총리

↓

이스라엘 구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 50:20)


바로

바로의 완악함

↓

하나님의 영광

↓

출애굽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출 9:16)


십자가

사탄의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탄의 가장 큰 패배였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행 2:23)

 

십자가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속이 동시에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악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사를 완성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4.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입니다.

하박국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저 하박국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아브라함도 기다렸습니다. 요셉도 기다렸습니다. 다윗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도 삼십 년을 기다리셨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학교입니다.


5. 하박국의 질문은 결국 예배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박국은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예배로 끝납니다.

1장은 질문입니다. 2장은 기다림입니다. 3장은 찬양입니다. 그 유명한 고백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합 3:17-18)

 

환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이 변했습니다. 상황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문제가 해결된 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그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적용

오늘 하박국은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문제를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가져가고 있는가?

기도는 불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정직하게 묻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내 문제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큰 그림을 신뢰하는가?

하나님의 시각은 언제나 우리의 시야보다 넓습니다.


셋째. 나는 결과를 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다리는가?

기다림은 믿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맺는말

하박국의 이름은 "포옹하다." 입니다. 그는 문제를 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품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인생의 수많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질문하는 믿음은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자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이 말씀은 하박국의 결론이며, 오늘 우리의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 깊은 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악을 바라보며 낙심했던 하박국처럼 저희도 수많은 질문을 품고 살아갑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정의가 사라진 것 같으며,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다시 믿습니다.

 

저희의 좁은 시야를 넘어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바라보게 하시고, 이해보다 신뢰를 선택하는 믿음을 주소서.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박국의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문제를 피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지고 가게 하시며, 질문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물이 예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기다림이 믿음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증언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우리의 현실이 메마른 광야와 같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님만을 소망하며,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