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팔복의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인가?
모든 복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들어가는 말
행복을 찾아 헤매는 시대, 예수님이 전하는 '행복'이란?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합니다.
더 많은 돈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만족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걱정도 많아지고, 성공할수록 불안도 커집니다.
풍요는 넘치는데 평안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가장 불안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흥미롭게도 세계에서 아주 작은 나라 부탄(Bhutan) 오랫동안 국민총생산(GDP) 보다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 을 국가의 목표로 삼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많은 책들이 이런 제목을 붙였습니다.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
사람들은 왜 그 나라에 관심을 가질까요? 행복의 공식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부탄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인 행복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환경에서 오는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놀랍게도 이렇게 시작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왜 예수님은 이 말씀부터 시작하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왜 예수님은 팔복의 첫 번째를 '심령이 가난한 자'로 시작하셨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예상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거룩한 사람이 복이 있다."
"믿음 좋은 사람이 복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첫 번째 항목이 아닙니다. 팔복 전체를 여는 문입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 기초가 가장 중요하듯, 팔복도 첫 번째 복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머지 일곱 복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애통도, 온유도, 의에 주리고 목마름도, 긍휼도, 화평도, 의를 위한 핍박도 모두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서만 시작됩니다.
왜 그럴까요?
가득 찬 컵에는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습니다. 가득 찬 창고에는 새로운 곡식을 넣을 수 없습니다.
가득 찬 마음에는 하나님이 들어오실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비우십니다.
그리고 채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2.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가난하다"는 단어는 헬라어 πτωχός(ptōchos) 입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헬라어에는 가난을 표현하는 단어가 두 개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πένης(Penēs) 생활은 어렵지만 노력하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소득은 적지만 생활은 가능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πτωχός(Ptōchos) 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완전히 파산한 거지입니다. 손을 벌리지 않으면 오늘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왜 가장 강한 단어를 사용하셨을까요?
하나님 나라는 자기 능력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3. 심령이 가난함은 복음의 출발점이다
성경은 인간을 어떻게 말합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10)
또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공로도 없습니다. 의도 없습니다. 자랑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영적 거지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비우시고 그 다음 채우신다
성경에는 놀랍도록 반복되는 하나님의 패턴이 있습니다.
먼저 비우십니다.그리고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함께 들여다 보겠습니다.
베드로
밤새 고기를 잡았습니다. 한 마리도 없습니다.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누가복음 5:4)
베드로는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누가복음 5:5)
"잡은 것이 없지만" 바로 이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빈 그물이 기적을 담았습니다.
실패가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야곱
평생 자기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속이고 빼앗고 도망쳤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잠이 듭니다. 인생 최악의 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밤 하나님은 하늘 사다리를 보여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가장 처절한 비움이 가장 위대한 계시가 되었습니다.
나오미
남편을 잃었습니다.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합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도다." (룻기 1:21)
그 비움은 메시아의 계보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나아만
갑옷을 입은 장군으로는 치유받지 못했습니다.
요단강 앞에서 갑옷을 벗은 죄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치유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갑옷을 먼저 벗기십니다. 교만을 벗기십니다. 자존심을 벗기십니다. 자기 의를 벗기십니다.
그래야 은혜를 입혀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실패는 하나님의 비움의 도구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실패입니다.
사업의 실패, 관계의 실패, 건강의 실패, 사역의 실패, 꿈의 실패,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실패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사용하십니다.
베드로의 실패도, 야곱의 실패도, 모세의 광야도, 요셉의 감옥도, 다윗의 도망자 생활도
엘리야의 로뎀나무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도, 모두 하나님의 비움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 우리 안의 교만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 안의 자기 의를 깨뜨리십니다. 우리 안의 자랑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은혜를 채우십니다.
6.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갈망한다
풍요는 종종 기도를 약하게 만듭니다. 성공은 하나님을 잊게 만듭니다.
그러나 가난한 심령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편 42:1)
또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시편 63:1)
가난한 심령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붙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 심령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7. 자기 부인이 모든 제자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자기 부인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인생의 왕좌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더 이상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열립니다.
8. 왜 첫 번째 복과 마지막 복만 현재형인가?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그리고 팔복 마지막도 동일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10)
중간의 복들은 "받을 것이요" "위로를 받을 것이요" "배부를 것이요" 처럼 미래형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와 마지막은 현재형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사람도 이미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팔복은 현재의 은혜로 시작하여 영원한 영광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여정입니다.
9. 맺는말. 모든 복은 비워진 심령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왜 팔복의 첫 번째를 심령이 가난한 자로 시작하셨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닙니다.
복음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첫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πτωχός(ptōchos), 곧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빈손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손이 되고, 우리의 빈마음이 하나님의 임재를 담는 성전이 되며,
우리의 깨어진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저는 하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 위에 하나님은 천국의 문을 여시고, 애통과 온유, 의에 대한 갈망, 긍휼과 화평, 그리고 의를 위한
담대한 삶으로 이어지는 팔복의 여정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모든 복은 채워진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비워진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충만하게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팔복의 첫 번째 말씀 앞에 저희를 세워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그동안 세상이 말하는 행복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고, 더 높이 올라가야 성공한 인생이라 믿었으며,
더 인정받고 더 소유해야 만족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행복은 세상을 더 많이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 의를 붙들고 있는 마음을 깨뜨려 주옵소서. 내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는 교만을 무너뜨려 주옵소서.
내 계획과 내 방법을 신뢰하는 완고함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심령을 가난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날마다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갈망하게 하시고, 메마른 땅이 단비를 기다리듯,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만 찾게 하옵소서.
혹시 지금 우리의 삶에 실패가 있다면, 그 실패를 원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눈물이 있다면 헛된 눈물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상실이 있다면 절망으로 끝나지 않게 하옵소서.
베드로의 빈 그물이 기적의 시작이 되었듯이, 야곱의 광야가 하늘 문이 열리는 자리가 되었듯이,
나오미의 비움이 메시아의 계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듯이, 나아만이 갑옷을 벗었을 때 치유를 경험했듯이,
우리의 실패와 눈물도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갑옷'을 벗겨 주옵소서.
직분이라는 갑옷, 성공이라는 갑옷, 명예라는 갑옷, 지식이라는 갑옷, 재물이라는 갑옷, 자존심이라는 갑옷,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는 갑옷까지도 벗겨 주셔서, 오직 십자가 앞에 한 사람의 죄인으로 서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먼저 비우시고, 그 빈자리를 성령으로 채워 주옵소서.
우리의 교만을 겸손으로 채우시고, 두려움을 믿음으로 채우시며, 불안을 평안으로 채우시고,
원망을 감사로 채우시며, 욕심을 거룩한 사명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
오늘도 우리 안에 복음의 첫 번째 문을 다시 열어 주옵소서.
우리의 빈손을 붙드시고, 우리의 깨어진 심령을 품어 주시며, 우리의 메마른 영혼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인생의 왕좌에서 내가 내려오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립니다.
우리의 시작도 주님이시고, 우리의 끝도 주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복의 근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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