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 5강] 하나님의 예정! 구원은 멈추지 않고 돌감람나무인 남은 자를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

knowledgeplatform100 2026. 7. 1. 09:40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남은 자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통로이다 (로마서 10:9-15, 11:11-36)

예정론으로 알게 되고, 남은 자로 풀린다

하나님은 언제나 '남은 자'를 통해 역사를 이루신다 (로마서 9:27-29, 11:1-5)

"또한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로마서 9:27)


1. 예정론은 결국 '남은 자'로 이루시는 언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9장의 예정론은 단순히 "누가 구원받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교리가 아닙니다.

바울은 곧바로 한 가지 더 큰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한 것인가?" 왜냐하면 현실을 보면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으며,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메시아가 오셨을 때 대부분의 유대인은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남은 자(Remnant) 때문입니다.

2. 성경은 처음부터 '전체'보다 '남은 자'를 통해 일하셨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놀라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수를 통해 일하시기보다 남겨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구속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노아 시대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을 남기셨습니다.

인류는 남은 자를 통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수많은 갈대아 우르 사람 중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민족은 한 사람의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요셉

열한 형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셨습니다. 한 사람을 통해 한 민족을 살리셨습니다.

모세

애굽에는 수백만 명의 히브리인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한 사람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기드온

하나님은 3만 2천 명을 줄이고 또 줄여 겨우 300명을 남기셨습니다. 왜입니까?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사사기 7:2)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같습니다.

숫자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3. 엘리야가 절망했을 때 하나님은 '남은 자'를 보여 주셨다

남은 자 신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건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광야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 고백입니까?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열왕기상 19:18)

 

엘리야는 자기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남은 자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사건을 로마서 11장에서 인용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5)

 

이 말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 두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 보여도, 교회가 위기를 맞아도,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남아 있습니다.

4. 이사야가 본 남은 자

이사야 선지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희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은 스알야숩입니다.

뜻은 무엇입니까?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하나님은 이 이름 자체를 설교로 사용하셨습니다.

 

심판은 끝이 아닙니다. 남은 자가 돌아올 것입니다.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사야 10장 20~21절)

 

바울은 바로 이 말씀을 로마서 9장에서 인용합니다. 즉, 바울은 새로운 신학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남은 자 신학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한 것입니다.

5. 남은 자는 숫자가 아니라 믿음이다

우리는 종종 교회의 성공을 숫자로 판단합니다.

몇 명이 모였는가? 얼마나 큰 건물인가? 얼마나 유명한 교회인가?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을 남기십니다. 

남은 자란 소수라는 의미보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홍수 속에서도 남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도 남았습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에서도 남았습니다.

바울은 로마 제국에서도 남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 속에서도 남았습니다.

 

남은 자는 환경이 아니라 언약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6. 남은 자에서 열방으로

여기서 바울은 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하자 복음은 어디로 향했습니까?

 

열방으로 향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 패턴이 반복됩니다.

바울은 먼저 회당으로 갑니다.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거절당합니다. 그러면 그는 선언합니다.

"이제 나는 이방인에게로 가노라." (사도행전 13:46)

 

이것이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입니다.

남은 자를 세우시고, 그 남은 자를 통해 열방을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붙잡아 두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7.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오늘 한국교회도 동일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차갑습니다. 믿음은 점점 약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남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숫자는 하나님을 놀라게 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프로그램도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끝까지 말씀을 붙드는 사람, 은혜를 붙드는 사람,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말아야 합니다.  "몇 명이 남았습니까?"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남은 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남은 자를 통해 역사를 이어 가셨고,

오늘도 그 동일한 원리로 교회를 세우시며 열방을 향한 복음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7. 하나님의 구원은 멈추지 않는다

남은 자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통로이다 (로마서 10:9-15, 11:11-36)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했고, 10장에서는 인간의 믿음과 책임을 말하며,

11장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의 완성을 보여 줍니다.

 

이 세 장은 따로 읽으면 오해하기 쉽지만 함께 읽으면 하나의 큰 그림이 보입니다.

그 그림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실패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로, 사마리아를 넘어 안디옥으로, 안디옥을 넘어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마침내 로마까지 복음은 확장되었습니다.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마저도 당신의 구속사 안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가.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반드시 균형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결코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불신앙은 죄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거절했습니다. 그 책임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까지도 당신의 구속사 안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십자가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큰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인류 구원의 길로 바꾸셨습니다.

 

사람의 악이 하나님의 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11장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나. 이방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의 구원이 유대인의 실패 때문에 생긴 '차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열방을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세기 12:3)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했습니다.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6)

 

예수님도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목적이 아니라 통로였습니다. 교회 역시 목적이 아니라 통로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소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을 흘려보내는 공동체입니다.

다. 감람나무의 비유가 말하는 겸손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감람나무 비유를 사용합니다. 원래 가지였던 유대인 가운데 믿지 않는 가지는 꺾였습니다.

그리고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접붙여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자랑하지 말라."

 

왜입니까? 뿌리가 우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뿌리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정론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남은 자 신학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도 우월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돌감람나무였습니다. 은혜로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라. 남은 자의 사명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남은 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은 엘리트 의식을 갖습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의 남은 자는 특권층이 아닙니다. 남은 자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노아는 남았지만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받았지만 열방의 복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선택받았지만 백성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엘리야는 남았지만 다시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택함을 받았지만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파송으로 이어집니다.

은혜는 언제나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예정은 언제나 선교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입니다.

8.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

오늘날 교회는 여러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속화, 다음 세대의 감소, 신앙의 약화, 사회적 신뢰의 하락. 그러나 하나님은 위기 속에서도 언제나 남은 자를 세우셨습니다.

 

질문은 "교회가 얼마나 커졌는가?"가 아닙니다.

질문은 "교회가 얼마나 거룩한가?"입니다.

질문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가?"입니다.

 

남은 자는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십자가를 자랑하며,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이 한 가정을 살립니다. 한 가정이 한 교회를 살립니다. 한 교회가 한 도시를 살립니다.

한 도시가 한 민족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9. 로마서 11장의 절정

바울은 모든 설명을 마친 후 더 이상 논쟁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배합니다. 그는 찬양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로마서 11:33)

 

이것이 예정론의 결론입니다.

논쟁이 아니라 경배입니다.

교만이 아니라 찬양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설명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그분의 은혜는 우리의 공로보다 크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죄보다 깊으며, 그분의 섭리는 우리의 이해보다 높습니다.

그러므로 예정론은 우리를 무릎 꿇게 하고, 남은 자 신학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10. 예정론에 대한 신학적 결론

(1) 예정론은 논쟁이 아니라 예배라는 열매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남은 자로 살고, 남은 자는 열방을 향해 나아간다."다." (로마서 11: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사 속에서 예정론은 수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 마르틴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논쟁, 장 칼뱅과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의 논쟁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씨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논쟁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찬양으로 끝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머리로 계산하는 대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경배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정론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이기에 저를 불러 주셨습니까?"

 

바로 이것이 예정론의 열매입니다. 교만이 아니라 감사. 우월감이 아니라 겸손. 논쟁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2) 남은 자는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성경의 남은 자(Remnant)는 단순히 숫자가 적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은 자는 홍수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던 노아였습니다. 우상숭배 시대에도 언약을 붙들었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갈멜산 이후에도 무릎 꿇지 않았던 칠천 명이었습니다. 포로 시대에도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했던 다니엘이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끝까지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남은 자란 시대를 이긴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끝까지 붙든 사람입니다.

세상은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세상은 규모를 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세상은 성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충성을 찾으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도 바로 이러한 남은 자입니다.

(3) 남은 자는 반드시 세상을 향해 보냄을 받는다

남은 자 신학은 결코 폐쇄적인 신학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선교적인 신학입니다.

노아는 남아서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아서 열방의 복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통해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사도들은 남아서 복음을 세계로 전했습니다.

 

교회도 남아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소금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은 자신을 비추지 않습니다. 남은 자는 언제나 세상을 향해 흘러갑니다.

은혜는 흘러갈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 복음은 전해질 때 더욱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랑은 나눌 때 더욱 깊어집니다.

(4)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질문

첫째,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공로를 붙잡고 있는 사람입니까?

둘째, 나는 남은 자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세상이 흔들려도, 환경이 무너져도, 말씀을 붙드는 사람입니까?

셋째, 나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 내 가족만, 내 교회만, 내 삶만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을 향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동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남은 자의 심장입니다.

11. 삶의 적용 : 예정론으로 살고, 남은 자로 걸어가십시오

오늘부터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은혜를 계산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구원을 자랑하지 말고 예배하십시오. 선택을 특권으로 여기지 말고 사명으로 받으십시오.

복음을 독점하지 말고 흘려보내십시오. 사람에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열매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씨를 뿌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남은 자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를 통해 가정을 회복하시고, 교회를 새롭게 하시며, 민족을 살리시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정론은 우리를 무릎 꿇게 하십시오.

 

남은 자 신학은 우리를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

은혜는 우리를 감사하게 하십시오. 성령은 우리를 순종하게 하십시오. 복음은 우리를 담대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내는 남은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영성 깊은 기도문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창세 전부터 우리를 아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요,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요,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오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모든 교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예정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선택을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남은 자의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흔들려도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환경이 어려워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며,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처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울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끝까지 사랑하게 하시며,

성령님처럼 오늘도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시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교회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지막 날까지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를 놓지 않게 하시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충성된 남은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안내해드립니다. 더 편하고 유익하게 콘텐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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