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 7강] 익숙함을 넘어 영접으로, 비판을 넘어 사랑으로

knowledgeplatform100 2026. 7. 2. 09:33

 

익숙함을 넘어 영접으로, 비판을 넘어 사랑으로

복음은  "누가 옳으냐?" 보다 "누가 더 사랑하느냐." 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품는 사람이다."

"믿음은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 제한(Self-Limitation), 케노시스, 자기비움" 입니다.

"교회는 벽돌을 던지는 곳이 아니라 벽돌을 쌓는 곳입니다."

 

 

들어가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매우 위험한 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죄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보다 더 교묘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익숙함'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는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예배가 감격이었고, 기도가 눈물이었고, 말씀이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익숙함이 찾아옵니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감격을 빼앗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익숙함이 기준이 되고, 기준이 율법이 되며, 율법은 결국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14장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고,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놀랍게도 "누가 옳으냐?" 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 더 사랑하느냐." 를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로마서 14장의 역사적 배경

로마교회는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 노예와 자유인, 남자와 여자, 문화와 전통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예배했습니다.

특별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 음식
  • 절기
  • 안식일
  • 정결법

이었습니다.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이방인은 아무 거리낌 없이 먹었습니다.

유대인은 절기를 중요하게 여겼고, 이방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교회 안에 "누가 더 믿음이 좋은가?" 라는 논쟁이 생긴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놀라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품는 사람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제1 장. 익숙함은 은혜를 잃게 만듭니다

1. 익숨함은 예수님도 거절할 만큼 사람을 눈멀게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로마서 14:1)

 

본문은 "비판하지 말라"로 시작합니다. 왜일까요?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진리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래 다닌 교회의 예배 방식. 익숙한 찬양. 익숙한 기도. 익숙한 복장. 익숙한 문화. 이것이

어느 순간 하나님의 기준보다 내 기준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 내 익숙함을 지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해석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까지 정죄했습니다.

익숙함은 예수님도 거절할 만큼 사람을 눈멀게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는 드럼을 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교회는 손을 들고 찬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복을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믿음의 기준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으니 너는 누구이기에 비판하느냐." (롬 14:3-4)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받은 사람을 우리가 거절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기준은 나의 취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복음은 나를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기는 것

복음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사건이 아닙니다. 복음은 자기중심성을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중심에 있으면 비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면 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품으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우리가 원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주셨다고 선언합니다. 은혜는 언제나 먼저 영접하는 것입니다.

3. 익숙함은 성장을 멈추게 한다

신앙의 가장 큰 적은 핍박이 아닙니다. 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통해 세워집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몸의 비유를 통해 눈과 손과 발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같은 역할을 하려 한다면 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름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름은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우리는 다양성 속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은 "왜 나와 다르지?" 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는 어떤 은혜를 주셨을까?"

를 묻는 것입니다. 그 질문이 시작될 때, 비판은 사라지고 존중이 시작됩니다.

 

제2장. 강한 믿음은 비판이 아니라 영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로마서 14:13)

 

앞에서 사도 바울은 "비판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제는 단순히 비판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살리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언제나 소극적인 신앙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14장의 핵심입니다.

1. 믿음은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 강하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롬 14:15)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사랑(Love) 입니다. 복음은 자유를 주지만 사랑은 그 자유를 절제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 권세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강함은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 제한(Self-Limitation), 케노시스, 자기비움입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케노시스(Kenosis, 자기 비움) 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권능이 없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예수님의 모습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보다 "형제를 위해 하지 않겠다." 가 더 강한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에 있지 않다

바울은 갑자기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4:17)

 

이 한 절은 로마서 14장의 중심입니다. 왜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 나라가 나올까요?

왜냐하면 문제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복음보다 작은 것을 복음보다 크게 만든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 무너질까요? 본질이 사라질 때입니다. 비본질이 중심이 될 때입니다.

예배 방식, 음악, 복장, 문화, 세대, 정치, 취향이 복음보다 앞설 때 공동체는 분열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특징]

(1) 의(義)

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 살아갑니다.

(2) 평강

평강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십자가 때문에 원수가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고 말합니다.

평강은 같아져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도 사랑할 수 있을 때 생깁니다.

(3) 희락

기쁨은 내 뜻이 이루어져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공동체 가운데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때보다 형제가 살아나는 것을 볼 때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쁨입니다.

3. 강한 믿음은 공동체를 세운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 14:19)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헬라어 오이코도메(οἰκοδομή) 입니다.

원래 건축 용어입니다. 벽돌 하나를 올려 집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벽돌을 던지는 곳이 아니라 벽돌을 쌓는 곳입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사람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잠언 18장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 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성도는 비판보다 격려를, 정죄보다 회복을, 비난보다 중보를 선택합니다.

4. 믿음이 약한 사람의 특징

바울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언제나 두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통제하려 합니다. 통제하지 못하면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비판은 내 불안을 감추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내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변화시키신다." 이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고, 품을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5. 선교적 관점에서 본 로마서 14장

복음은 언제나 경계를 넘어갑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유대로,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끝까지 나아갔습니다(사도행전 1:8).

복음의 본질은 익숙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입니다. 

 

교회는 문화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화해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교는 먼 나라로 가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내 곁에 있는, 나와 다른 사람을 영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제를 품는 순간, 복음은 삶 속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한 믿음은 많이 아는 믿음이 아닙니다. 많이 참는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은 많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많이 품는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은 내 자유를 주장하는 믿음이 아니라, 형제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유를 내려놓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영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때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제3장. 강한 믿음은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지는 믿음이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로마서 15:1)

 

이제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말한 "비판하지 말라"는 권면을 더욱 적극적인 차원으로 발전시킵니다.

이제는 단순히 비판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절정입니다.

복음은 죄인을 용서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 죄인의 짐까지 대신 지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1. 믿음의 강함은 힘이 아니라 희생이다

세상은 강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 능력이 많은 사람
  • 영향력이 큰 사람
  • 성공한 사람
  • 다른 사람을 이끄는 사람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강한 사람은 남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짐을 지는 사람입니다. "담당한다"는 말은 헬라어 바스타조(βαστάζω) 입니다.

 

이 단어는 "어깨에 메다" "짐을 대신 들어 주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모습과 같은 단어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강한 믿음은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남의 무거운 짐을 자기 어깨에 올려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 예수님의 믿음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타인 중심이었다

바울은 우리의 시선을 즉시 예수님께 돌립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롬 15:3)

 

십자가의 본질은 자기희생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날 현대 문화는 "나를 행복하게 하라" "고통을 피하라" "나를 표현하라" 를 최고의 가치로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 "형제의 구원" "하나님의 영광" 을 자신의 행복보다 먼저 두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3. 성숙한 신앙은 '자기부인'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자기부인은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중심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인간은 자신 안으로 굽어버린 존재(Incurvatus in se)."

 

죄인은 언제나 자기만 봅니다. 그러나 복음은 시선을 바꿉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형제를 바라보게 합니다.

십자가는 수직으로 하나님과 연결하고, 수평으로 이웃과 연결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진 사람은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4. 성경은 우리를 넓은 사람으로 만든다

바울은 매우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롬 15:4)

 

왜 갑자기 성경 이야기를 할까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경험만으로는 결코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좁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제한적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쉽게 고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확장시킵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배우게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배우게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성품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5. 믿음이 강한 사람은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한다

바울은 이어서 기도합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롬 15:5)

 

여기서 "뜻이 같다"는 것은 모든 의견이 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 마음의 방향이 같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연합은 성격이 같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가 같아서도 아닙니다. 연령이 같아서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방향이 같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예배했습니다. 노예와 주인이 함께 성찬에 참여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혁명이었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품어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6. "서로 받으라"는 복음의 명령

바울은 마지막으로 로마서 15장의 핵심을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7)

 

이 말씀은 로마서 14장부터 이어지는 모든 권면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상대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원수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조건 없이 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용납받은 은혜를 용납하는 삶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윤리이며,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성입니다.

7.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영접의 공동체

로마서 15장 8-13절에서 바울은 구약의 여러 말씀을 인용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선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처음부터 모든 민족을 향한 것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나와 같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르시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단순히 해외에 복음을 전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선교는 내 안에 있는 편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리스도께서 영접하신 사람을 나도 영접하는 삶입니다.

교회가 서로를 품을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됩니다.

결론 : 강한 믿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믿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한 믿음은 지식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약한 자를 세워 주는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형제를 위해 기꺼이 내려놓는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은 비판하는 입술이 아니라, 축복하는 입술을 갖는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은 판단하는 눈이 아니라, 눈물 흘리는 눈을 갖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강한 믿음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받을 때 교회는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결론.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1. 로마서 14-15장의 결론은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과 15장에서 오랫동안 공동체의 갈등을 이야기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먹는 문제, 절기의 문제, 양심의 문제, 서로 비판하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결론은 의외입니다. 바울은 "이제 싸우지 말라"로 끝맺지 않습니다.

"규칙을 잘 지키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그는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왜일까요?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결심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의지만으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품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연합은 인간이 만든 조직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2.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을 다양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 평강의 하나님
  • 은혜의 하나님
  • 위로의 하나님
  • 사랑의 하나님
  • 영광의 하나님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망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믿었습니다(로마서 4:18).

이스라엘은 홍해 앞에서 소망을 잃었지만 하나님은 길을 만드셨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살아났습니다(에스겔 37장). 십자가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이 있었습니다. 무덤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아닙니다. 소망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는 반드시 완성된다는 확신입니다.

3. 성령께서 공동체를 변화시키신다

바울은 말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능력입니다. 교회는 프로그램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조직만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납니다.

 

오순절에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담대한 증인이 된 것도 성령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경쟁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발을 씻기는 공동체가 된 것도 성령 때문이었습니다.

 

원수였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식탁에 앉게 된 것도 성령 때문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비판이 중보기도로 바뀌고, 상처가 치유로 바뀌며, 분열이 화해로 바뀝니다.

진정한 부흥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꾸시는 역사입니다.

4.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는 공동체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세상은 교회의 건물을 통해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다. 교회의 규모를 통해 하나님을 보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초대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킨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건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았고, 병든 자를 품었으며, 고아와 과부를 섬겼고, 원수까지 용서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세상은 "저들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다시 세상의 소망이 되려면, 복음을 말하는 공동체를 넘어 복음을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5.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내 안에도 형제를 판단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복음보다 내 경험과 전통을 더 앞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이미 품으신 사람을 내가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로마서 14장과 15장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강한 믿음은 더 많이 아는 믿음이 아닙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믿음이 아닙니다. 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믿음입니다.

강한 믿음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영접할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가 되고,

세상은 그 교회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맺는말

오늘 로마서 14장과 15장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가 아니라, "당신은 얼마나 많이 품고 있는가?"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평가하시기 전에 먼저 품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전에 조건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전한 영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십자가 앞에 서서 용납받은 사람답게 용납하고, 용서받은 사람답게 용서하며, 사랑받은 사람답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회복되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영성 깊은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 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때때로 복음보다 우리의 경험을 앞세우고, 은혜보다 기준을 앞세우며, 사랑보다 판단을 앞세웠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강한 믿음이 다른 사람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약한 자를 품고 세우는 사랑임을 날마다 배우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그리스도께로 돌려 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형제와 자매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에서는 비판보다 축복이, 정죄보다 위로가, 불평보다 감사가 흘러나오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 주시고, 우리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더욱 하나 되게 하시며,

서로를 영접하는 삶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옵소서.

 

복음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복음을 살아내게 하시며, 십자가를 믿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십자가를 닮아가게 하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우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넘치게 하시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시며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안내해드립니다. 더 편하고 유익하게 콘텐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EC%97%A0%EB%A7%88%EC%98%A4%EC%A7%80%EC%8B%9D%EB%B0%9C%EC%A0%84%EC%86%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