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복음 들여다보기

[영성 칼럼] 아나니아(삽비라)와 아간 (사도행전 5장)

knowledgeplatform100 2026. 9. 3. 17:03

막힌 것을 뚫고 흐르게 하라 (사도행전 5장 1–42절)

성령이 임하시면 복음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가만히 돌아보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예전보다 기도가 막혔을까?”

“왜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을까?”

“왜 교회는 다니는데 삶에는 변화가 없을까?”

“왜 예배를 드리는데 기쁨이 없을까?”

“왜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서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런데 사도행전 5장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복음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 안에 있는 죄와 거짓과 자기중심성이

하나님의 생명의 흐름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두 가지 장면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하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사건 이후에 오히려 더 큰 표적과 기사와 부흥과 복음 전파가 일어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실 때, 복음의 흐름은 더욱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1. 교회의 능력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에게서 옵니다

먼저 사도행전 5장을 이해하려면 초대교회의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오늘날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건물도 없었습니다. 화려한 조직도 없었습니다. 많은 재정도 없었습니다. 사회적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기도가 살아났습니다. 말씀이 살아났습니다. 공동체가 살아났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퍼져 나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교회의 본질적인 능력은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능력도 아닙니다.

프로그램의 능력도 아닙니다.

재정의 능력도 아닙니다.

건물의 능력도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성령께서 임하시면 묶여 있던 것이 풀립니다. 죄의 사슬이 풀립니다. 두려움의 사슬이 풀립니다.

사람의 인정에 대한 집착이 풀립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풀립니다. 과거의 상처에 묶여 있던 마음이 풀립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열심히 하자”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다시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도록 막힌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교회를 부흥시키기 전에 먼저 교회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 1절부터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밭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를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왔습니다. 겉으로 보면 굉장히 훌륭한 행동입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한 가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돈을 일부 남겨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즉 그들에게 재산을 전부 바치라는 강제 명령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일부만 드리면서 전부 드린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의 일부를 남겨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사람들에게는

경건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헌금 액수에 관한 사건이 아니라 초기 교회 공동체의 거룩함과 성령의 임재를 훼손하는 기만의 문제로 해석됩니다.

 

3. 하나님은 돈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돈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일이 어려워지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성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았습니다. “바나바가 이렇게 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우리도 헌신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이 마음이 그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습니까? 아니면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까?

고린도전서 4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고 바울은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코람데오(Coram Deo)**입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4. 가장 위험한 죄는 ‘작아 보이는 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큰 죄를 두려워합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폭력, 이런 것은 죄라고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작아 보이는 거짓말은 괜찮은가?”

“조금 과장하는 것은 괜찮은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짓된 표현은 괜찮은가?”

“기도하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괜찮은가?”

“교회의 숫자를 실제보다 부풀리는 것은 괜찮은가?”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를 더 의식하는 것은 괜찮은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거짓은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주인으로 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5. 사탄이 가장 먼저 공격하는 곳은 ‘마음’입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마음입니다. 사탄은 먼저 돈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먼저 마음을 공격합니다.

사탄은 먼저 행동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먼저 생각을 공격합니다.

“사람들이 너를 인정해야 해.”

“네가 더 대단해 보여야 해.”

“전부 바친 것처럼 보여야 해.”

“조금 숨겨도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해.”

 

이렇게 마음에 들어온 거짓이 결국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우리의 행동 이전에 마음의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잠언 4장 23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마음에 거짓을 들이지 마십시오.

마음에 교만을 들이지 마십시오.

마음에 인정욕구를 키우지 마십시오.

마음에 탐심을 키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마음이 막히면 삶의 흐름도 막히기 때문입니다.

 

6. 아간과 아나니아의 공통점 — 공동체의 흐름을 막는 죄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여호수아 7장의 아간 사건과 연결해서 이해해 온 전통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F. F. 브루스 역시 아간의 사건과 아나니아 사건을 연결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해 가는 흐름을 기만이 가로막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호수아 7장에서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이 성 앞에서 패배합니다.

왜입니까?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감추어진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간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5장에서도 초대교회가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바로 그 순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공동체 안에 숨겨진 죄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정의 거짓이 자녀에게 영향을 줍니다.

지도자의 위선이 공동체에 영향을 줍니다.

성도의 탐욕이 교회의 영적 분위기에 영향을 줍니다.

한 사람의 거짓이 다른 사람의 거짓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거룩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7. 그런데 놀랍게도 정결하게 된 교회에 능력이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5장 11절입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여기서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무엇이 일어납니까? 사도행전 5장 12절부터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합니다. 주께로 나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집니다. 병든 사람들이 나음을 받습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이 회복됩니다.

거짓이 제거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동체가 되자 생명의 흐름이 다시 강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거짓이 사라지자 능력이 나타나고, 막힌 것이 뚫리면서 하나님의 역사와 치유와 회복이 흘러가기 시작한다”는 메시지입니다.

 

8. 교회의 능력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만 붙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매우 역설적입니다.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은과 금도 없었습니다. 화려한 건물도 없었습니다. 정치적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것이 초대교회의 능력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것이 복음의 중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부활. 회개. 죄 사함. 성령. 하나님 나라.

우리가 이것을 잃어버리고 다른 것들로 복잡하게 만들면 복음의 중심이 흐려집니다.

 

교회가 예수보다 프로그램을 더 자랑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십자가보다 사람의 성공을 더 자랑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복음보다 사람의 인기와 숫자를 더 자랑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9. 복음이 흐르는 교회에는 반드시 핍박도 따라옵니다

사도행전 5장의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부흥과 핍박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주께로 몰려옵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시기합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힙니다.

 

교회는 성장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교회를 막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현실입니다.

복음이 강하게 역사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이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저항도 나타납니다.

고난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고난이 옵니다.

사도들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옥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말합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께서 감옥 문을 열어주신 목적은 단순히 사도들을 편하게 해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0.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경험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편안해지겠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시 가라.” “다시 전하라.” “다시 증언하라.”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라.” 이것이 사도행전입니다.

 

기적은 목적이 아닙니다. 복음이 목적입니다. 치유가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목적입니다.

문이 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열린 문을 통해 복음이 나아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11.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심문합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

그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합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입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이 복음의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무시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가장 높은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갑니다. 사람이 막아도 하나님이 보내시면 갑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순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복음이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12. 가말리엘의 말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통찰

사도행전 5장에는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당시 존경받던 율법교사였습니다.

가말리엘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드다와 갈릴리의 유다라는 역사적 사례를 들면서 사도들의 운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면 결국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면 자신들이 막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가말리엘의 태도는 감정을 통제하고 성급한 판단을 피하는 신중합니다. 가말리엘의 말 가운데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8–39절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여기에는 깊은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막으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여시면 열립니다. 사람이 닫으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흐르게 하시면 흐릅니다.

감옥도 복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채찍도 복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종교 권력도 복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죽음조차 복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3. 그런데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 기뻐합니다

사도행전 5장 40절 이후를 보면 사도들이 채찍질을 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왜 기뻐했습니까? 고난 자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자기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2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막아도 계속합니다. 때려도 계속합니다. 감옥에 넣어도 계속합니다. 위협해도 계속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한 가지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14. 우리의 삶에서도 무엇인가 막혀 있다면 먼저 ‘능력’을 구하지 말고 ‘정결’을 구하십시오

오늘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 봅시다. 혹시 여러분의 기도가 막혀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 더 큰 능력을 주세요”라고 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 안의 막힌 것을 보여 주십시오.”

 

혹시 예배가 막혀 있습니까? “하나님, 내 안에 사람을 의식하는 마음이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혹시 기쁨이 사라졌습니까? “하나님, 내 안에 감추어진 죄가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혹시 복음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습니까? “하나님, 내가 예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혹시 물질 때문에 마음이 복잡합니까? “하나님, 내 마음에 탐심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보여 주십시오.”

혹시 사람의 인정이 너무 중요합니까? “하나님,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해주십시오.”

 

다윗은 죄를 범한 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편 51편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십시오.”

 

15. 정결함은 능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공시켜 주신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복음은 그런 공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결하게 사는 이유는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 거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 응답하기 위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정결함은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맺어가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율법주의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내가 깨끗해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는 거룩하게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16. “막힌 것을 뚫고 흐르게 하라”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말씀을 네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거짓을 버리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십시오. 작은 거짓말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과장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경건을 만들지 마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가능하면 즉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십시오.

둘째,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십시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신앙생활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면 됩니다.

사람이 칭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됩니다. 사람이 몰라줘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십시오.

코람데오의 신앙을 회복하십시오.

셋째, 예수님에게 집중하십시오.

복잡해지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의 중심을 다시 예수님께 가져오십시오.

기도의 중심도 예수님입니다.

말씀의 중심도 예수님입니다.

예배의 중심도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중심도 예수님입니다.

선교의 중심도 예수님입니다.

삶의 중심도 예수님입니다. 바울처럼 고백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넷째, 막혀도 복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환경이 막혀도 멈추지 마십시오.

사람이 막아도 멈추지 마십시오.

고난이 와도 멈추지 마십시오.

실패했다고 멈추지 마십시오.

나이가 들었다고 멈추지 마십시오.

사도들은 성전에서든 집에서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짜 복음의 능력입니다.

 

결론 — 하나님은 막힌 곳을 뚫고 생명을 흐르게 하십니다

오늘 사도행전 5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더 강해져야 한다”가 아닙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도 아닙니다. “사람에게 더 인정받아야 한다”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막힌 것을 제거하라.”

거짓을 제거하십시오. 교만을 제거하십시오. 탐심을 제거하십시오. 인정욕구를 내려놓으십시오. 위선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막힌 기도가 다시 흐릅니다.

막힌 예배가 다시 흐릅니다.

막힌 사랑이 다시 흐릅니다.

막힌 용서가 다시 흐릅니다.

막힌 복음이 다시 흐릅니다.

막힌 가정에 은혜가 흐릅니다.

막힌 공동체에 생명이 흐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물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관이 막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와 거짓과 자기중심성이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길을 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내 안의 막힌 것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살았던 마음을 보여 주십시오.”

“내 안의 거짓을 제거해 주십시오.”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주십시오.”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들의 고백을 우리 자신의 고백으로 삼읍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한 가지를 붙드십시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십자가면 충분합니다.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성령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우리 안에서 막히지 않고, 가정으로 흘러가고, 교회로 흘러가고, 다음 세대로 흘러가고,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십시오.

막힌 것을 뚫고 흐르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이 다시 흐르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흐르게 하십시오.

복음의 능력이 다시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십시오. 

 

오늘 말씀의 핵심 한 문장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죄와 위선을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며, 어떤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멈추지 않는다.”

 

영성 깊은 마무리 기도

막힌 것을 뚫고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도행전 5장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아시는 주님, 사람에게는 감추어도 하나님께 감출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 우리 안에 있는 거짓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왔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칭찬을 하나님의 칭찬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겉으로는 경건한 것 같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던 우리의 위선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우리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시고, 사람의 판단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에서 막힌 것을 뚫어 주옵소서.

부부 사이에 막힌 사랑이 다시 흐르게 하시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막힌 대화가 다시 흐르게 하시며, 상처받은 마음에 용서와 화해의 강물이 흐르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안에도 막힌 것을 뚫어 주옵소서.

사람의 욕심이 막지 못하게 하시고, 교만이 막지 못하게 하시고, 경쟁과 시기가 막지 못하게 하시고, 

거짓과 위선이 막지 못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의 생명이 흐르게 하시고, 기도의 불이 흐르게 하시며, 예배의 감격이 흐르게 하시고, 복음의 능력이 흐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달라고 하기 전에 예수님 한 분을 다시 붙들게 하옵소서.

 

은과 금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게 하시며,

사람의 박수보다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어떤 고난이 와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어떤 핍박이 와도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며,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이 막힌 웅덩이가 아니라 성령의 생수가 흘러가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하여 가정으로 생명이 흐르게 하시고, 교회로 은혜가 흐르게 하시며, 다음 세대로 복음이 흐르게 하시고,

세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마음을 다시 성령께 열어 드립니다.

막힌 것을 뚫어 주옵소서. 굳어진 것을 부드럽게 하옵소서. 더러운 것을 씻어 주옵소서. 거짓된 것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성령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다시 흐르게 하옵소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사람에게 인정받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마지막 고백이 “나는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었습니다”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