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믿음으로 태어난 사람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요한일서 5장 1–3절)
오늘 우리는 요한일서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요한일서는 사랑의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선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 이르면 요한은 사랑을 말하면서 믿음을 전면에 드러냅니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은 서로 떨어져 있는 세 가지 덕목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고, 사랑은 그 연합의 열매로 나타나며, 순종은 그 사랑이 삶 속에서 실제가 되는 길입니다.
요한은 5장 1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요일 5:1)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종교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기독교 문화를 익숙하게 여기거나 교회에 오래 출석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입니다.
1-1. 믿음은 새로운 생명의 출발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3장의 거듭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거듭남은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은 우리가 허물로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그 믿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훌륭한 스승이나 도덕적 모범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인가?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네가 얼마나 성공했는가?”
그러나 복음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누구에게서 태어났는가? 너는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의 가장 깊은 정체성은 성취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생명에 있습니다.
1-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합니다
요한일서 5장 1절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그를 낳으신 이를 사랑할 뿐 아니라, 그에게서 난 사람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한다면, 그 사랑은 아직 삶 속에서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형제 사랑은 단순한 호감이나 감정적 친밀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때로는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을 향해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은 악을 무조건 용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말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필요한 경계를 세우는 일도 사랑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상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고 회복을 바라야 합니다.
교회는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이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하나 됨은 인간적인 유사성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낳으신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 기초합니다.
1-3. 사랑은 말씀을 기쁨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2–3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연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사랑은 말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뜻을 존중하고 그 뜻을 따라 행동합니다.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의 말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 말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기뻐하는 일을 기꺼이 행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귀찮은 규칙으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갑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적인 행위의 외형보다 말씀을 듣고 따르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무겁지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고통이나 희생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정직을 지키고, 자기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실제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계명이 무겁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순종의 동기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순종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복음의 순서는 은혜가 먼저이고, 순종은 그 은혜의 열매입니다.
2. 세상의 기준을 넘어서는 승리 — 믿음의 푯대
요한일서 5장 4절은 오늘 강해의 중심 선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이며,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정체성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무엇이며,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2-1.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욕망의 질서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세상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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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정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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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정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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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의 자랑
이 표현은 창조 세계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조건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는 선하며,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요 3:16).
요한이 경계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욕망과 자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가치 체계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하나님보다 자기 욕망을 우선하는 삶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소유와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삶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자신이 가진 지위와 능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삶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듭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안심하고, 남보다 앞서야 인정받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새로운 옷을 입고, 좋은 물건을 사용하고, 공부하고, 일하며 발전하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주인이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소유에 사로잡힙니다.
성공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성공이 우리 삶의 목적을 지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감사함으로 누리는 것과 그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세상의 가치가 우리 영혼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믿음입니다.
2-2. 승리의 기준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은 승리를 어떻게 정의합니까?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더 많은 것을 얻는 것,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하는 것,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것을 승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출신과 종교적 자랑, 과거의 성취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추어 새롭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며,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을 끝까지 걷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경쟁하여 그들을 이기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치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붙들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2-3. 철인 경기의 완주처럼, 믿음은 끝까지 걷는 것입니다
철인 3종 경기는 수영과 사이클, 달리기를 연이어 수행하는 극한의 경기입니다.
사람들은 기록과 순위를 주목하지만, 경기의 마지막에는 각자의 사연을 품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참가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달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달립니다.
경기에서 가장 빠른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여정을 끝까지 감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 예화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다른 사람의 기록을 뛰어넘는 경쟁이 아닙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믿음의 경주에서 인내와 훈련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은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 달리며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고난이 없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어떤 이들은 약속의 성취를 경험했지만, 어떤 이들은 고난과 박해 속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세상에서 모두 성공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이는 결과가 어떠하든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세상의 평가표에 기록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실과 사랑과 인내를 붙들었다면, 그것은 믿음의 승리입니다.
2-4. 믿음의 승리는 예수님을 믿는 데서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5장 5절은 묻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5:5)
믿음의 승리는 자기 확신이나 정신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순히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자기암시가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 제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붙드시고 인도하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3. 물과 피와 성령, 예수님을 증언하는 세 증인
이제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요한일서 5장 6–8절)
6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요일 5:6)
이 구절은 요한일서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물과 피의 의미를 여러 방식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물은 예수님의 세례와 낮아지심, 피는 십자가의 대속, 성령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으로 연결됩니다. 이 흐름을 살리면서 본문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3-1. 물 —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물은 예수님의 세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십니다(마 3:13–17).
예수님의 세례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의 자리로 내려오시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공개적으로 시작하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우리와 함께하셨으며, 우리를 대신하여 구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연약함을 경험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성육신은 우리에게 구원이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삶 가운데 들어오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줍니다.
3-2. 피 —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입니다
요한일서 5장 6절은 예수님께서 물로만 임하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세례와 공생애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6절은 그분이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상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선포합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한 의로운 사람이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비극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루신 대속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목이 열렸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죄가 없다고 주장해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 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도덕적 완전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입니다.
3-3. 성령 —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증언하십니다
요한일서 5장 6절 후반부는 성령께서 진리이시며 증언하신다고 말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을 흐리게 하거나 다른 구원자를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 안에 이루십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께서 자신을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도록 이끄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진리를 마음에 확증하십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확증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내적 증거는 성경과 분리된 개인적 감정이나 직관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말씀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으십니다.
3-4. 물과 피와 성령은 하나의 구원을 증언합니다
요한일서 5장 7–8절은 하늘과 땅의 증언에 관하여 말합니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 5:7)
본문의 세 증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함께 증언합니다.
물은 예수님의 세례와 공적 사역을, 피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을,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를 서로 분리된 구원의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십자가, 성령의 증언은 한 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의 구원 사역을 가리킵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도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셨다면 우리도 교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셨다면 우리도 사랑을 말로만 표현하지 않고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섬김과 희생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보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자가를 다시 이루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 그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삶입니다.
4. 하나님의 증언을 믿는 사람 — 영생의 확신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설명한 후, 하나님의 증언을 믿는 문제로 나아갑니다. (요한일서 5장 9–13절)
9절은 사람의 증언도 받아들이는데 하나님의 증언은 더욱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셨습니다. 그 증언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입니다.
4-1.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0절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오직 외부의 정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복음을 들을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고,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적 확신을 언제나 강렬한 감정이나 특별한 체험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성도는 믿음이 뜨겁게 느껴지는 시기를 경험합니다. 어떤 성도는 오랜 시간 의심과 씨름하면서도 말씀을 붙듭니다.
믿음의 확실성은 감정의 강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4-2. 영생은 죽음 이후의 시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은 하나님의 증언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이며, 그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영생은 단순히 죽지 않고 끝없이 존재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예수님은 영생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안으로 들어가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미래에 완성될 생명이면서 동시에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 질병과 죽음, 고난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마지막 결론이 아니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약속의 근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그분께 속한 사람은 죽음 너머의 생명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4-3. 영생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기초합니다
요한일서 5장 13절은 이 서신을 기록한 목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3)
요한은 성도들이 영생을 확신하기 원했습니다.
이 확신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다고 평가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약속을 신뢰하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넘어질 때마다 구원이 취소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구원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죄를 가볍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은혜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확신은 두 가지를 함께 붙듭니다.
첫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에 기초합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은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가 부족할 때 우리는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은혜를 의지하여 믿음의 길을 걷습니다.
영생의 확신은 내가 얼마나 완벽한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5. 기도의 담대함과 하나님의 뜻
영생의 확신은 기도의 담대함으로 이어집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담대함을 얻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기 때문에 자신의 필요와 두려움과 소망을 그분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얻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기도의 담대함은 하나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자유입니다.
5-1. 기도는 하나님을 조종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기도를 마치 소원을 이루는 공식처럼 생각합니다.
“이만큼 기도하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셨습니다(마 26:39).
이것은 기도가 무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는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다만 그 기도는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우리는 병든 사람의 치유를 구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회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 필요한 지혜와 정직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결과를 구하되, 무엇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5-2. 형제를 위한 기도는 생명을 향한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그를 위하여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형제가 죄에 빠졌을 때 정죄만 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발견하면 쉽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죄를 숨기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죄를 진지하게 다루되, 죄에 빠진 사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본문은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어려운 표현도 사용합니다. 이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전체의 문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완고한 불신앙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근거로 특정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우리가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모든 죄를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책임을 강조합니다.
17절은 모든 불의가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형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6. 하나님께 속한 삶, 우상을 멀리하는 마지막 권면
요한일서는 마지막 세 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 가지 선언으로 정리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의 지배 아래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악한 자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6-1. 새 생명은 죄와 싸우는 삶을 낳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요한일서의 앞선 가르침과 충돌합니다.
요한일서 1장 8–9절은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5장 18절의 핵심은 거듭난 사람이 죄를 삶의 주인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그 지배 아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싸웁니다. 때로 넘어지지만 죄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께 돌아가며 성령의 도움을 구합니다.
거듭남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죄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된 상태입니다. 이전에는 죄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 안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죄를 슬퍼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6-2. 세상은 악한 자의 영향 아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은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창조물이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이 세상의 질서와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이 세상의 마지막 권세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삶에 깊은 위로를 줍니다.
세상의 불의가 커 보일 때에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인간의 악이 역사를 흔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두려워하며 세상의 방식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진리와 사랑을 실천합니다.
6-3.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십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시고, 우리가 참된 이를 알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막연한 종교심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연합하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과 “영생”에 연결하여 말합니다.
이 구절의 문법적 세부 해석에는 논의가 있지만, 요한일서 전체는 예수님의 신성과 구원 사역을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이셨다고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8절에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참 하나님을 아는 길이며, 영생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6-4.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요한일서의 마지막 문장은 짧지만 강력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요일 5:21)
왜 영생과 믿음과 사랑을 이야기한 요한은 마지막에 우상을 경계하라고 말합니까?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형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하나님 없이도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믿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과 명예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 권력, 쾌락, 심지어 종교적 성취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은 우리에게 안전을 약속합니다.
“이것만 가지면 괜찮아질 것이다.”
“이 자리에 오르면 행복해질 것이다.”
“이 사람의 인정을 받으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상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돈은 생활을 돕는 수단이지만 영생을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정은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성공은 잠시 기쁨을 줄 수 있지만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선물을 감사함으로 누리되, 그것을 하나님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용하고, 그것이 사라질 때에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7. 맺음말 — 믿음의 승리는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5장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한 편의 신앙고백처럼 펼쳐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은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욕망과 자랑의 질서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붙들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질병과 고난을 겪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물과 피와 성령의 증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분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기도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우상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남보다 앞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끝까지 걸으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성공을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구를 믿고 누구를 사랑하며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보십니다.
오늘 우리의 결단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고, 그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영생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실하십니다.
그분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마침 기도 — 세상을 이기는 믿음과 영생의 확신을 주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낳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사람의 인정과 성공과 소유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더욱 깊이 믿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의 감정과 형편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형제를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손과 발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욕망과 자랑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남보다 앞서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을 우리의 푯대로 삼게 하옵소서.
물과 피와 성령으로 증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게 하옵소서. 주님의 낮아지심을 배우고, 십자가의 대속을 의지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영생의 확신을 주시고, 죽음과 고난 앞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시며,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마지막까지 우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게 하시고, 오직 참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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