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의 시작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
복음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눈이 열리고 힘을 얻는 유일한 길 (로마서 1:1-1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인터넷에는 지식이 넘쳐나고, 세상은 성공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보는 많아졌지만 사람들의 영적인 눈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라"(고린도후서 4:4)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닙니다. 새로운 철학도 아닙니다. 더 많은 경험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바로 이 경험을 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사도행전 9장).
그 순간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적인 눈은 열렸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아나니아가 기도하자
"비늘 같은 것이 그의 눈에서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
바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가 기록한 로마서는 바로 눈을 열어 주는 복음이며, 동시에 세상을 이길 능력을 공급하는 복음입니다.
실제로 교회사 역시 이를 증명합니다.
- 어거스틴은 로마서를 읽다가 회심했습니다.
-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을 통해 종교개혁의 불꽃을 붙였습니다.
- 존 웨슬리는 로마서 서문을 듣던 중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은 새로운 철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다시 발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로마서를 통해 동일한 은혜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1.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의 정의부터 분명히 합니다.
"이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롬 1:1-7)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교리가 아닙니다. 복음은 종교가 아닙니다. 복음은 철학도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Gospel, εὐαγγέλιον)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좋은 소식은 단순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이 복음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 복음이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구약 전체가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2)
놀라운 사실입니다. 복음은 신약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 전체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5:39)
창세기의 어린양도 출애굽기의 유월절도 레위기의 제사도 민수기의 놋뱀도 다윗 왕도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성경은 66권이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두 본성을 소개합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
(롬 1:3-4)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인성이 없으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없습니다. 신성이 없으면 죄인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유일한 지점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시킵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학자다." 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내가 누구에게 속했는가"를 알려줍니다.
세상은 성취로 정체성을 만들지만 복음은 관계로 정체성을 회복시킵니다.
우리는 성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신분을 바꾸고, 신분은 삶을 바꾸며, 삶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2. 복음에 빚진 사람만이 세상을 살립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바울은 이제 자신의 삶을 고백합니다. (로마서 1:8-15)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로마서 1:14)
여기서 말하는 빚은 돈의 빚이 아닙니다. 은혜의 빚입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흘려보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선교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엄청난 은혜를 받았기에 그 은혜를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태복음 10:8)
복음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복음을 소비하는 신자가 많고 복음을 흘려보내는 제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가 이미 믿음이 좋은 교회임에도 다시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왜입니까?
복음은 한 번 듣고 끝나는 메시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너무 쉽게 복음보다 성공을, 예수보다 문제 해결을, 십자가보다 자신의 의를 붙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한다."
복음은 신앙의 입구가 아니라 평생 걸어가는 길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복음'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수많은 일을 합니다.
교육도 합니다. 봉사도 합니다. 구제도 합니다. 상담도 합니다. 문화사역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초대교회는 재정도 부족했습니다. 건물도 없었습니다. 조직도 약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왜입니까? 복음 하나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프로그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목회의 능력도 시스템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복음이 선명할수록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예수님이 중심일수록 성도는 살아납니다.
3.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제 로마서 전체를 대표하는 핵심 선언이 등장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여기서 '능력'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δύναμις(dynamis)입니다. 영어 Dynamite의 어원이 된 단어입니다.
복음은 정보를 전달하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을 폭발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왜 복음이 능력입니까?
복음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자녀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교육으로 조금 변할 수 있습니다. 환경으로 잠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역사하실 때만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17)
복음은 행동을 바꾸기 전에 존재를 바꿉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행동을 바꾸면 사람이 바뀐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말합니다. "사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복음은 죄인을 먼저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그 다음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종교는 착하게 살아야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
이 한 구절이 교회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을 붙드는 순간 율법주의의 사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선물로 주어져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 '이중 전가(Double Imputation)'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갈 3:27)
개혁신학은 이를 이중 전가(Double Imputation)라고 설명합니다.
첫째,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고린도후서 5:21)
둘째,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칭의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를 입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성경은 이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갈라디아서 3:27) 고 표현합니다.
복음은 '동기화' 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현대적으로 설명하면 복음은 '동기화(Synchronization)'와 같습니다.
오래된 기기에 새 운영체제를 설치하듯,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의 생명과 의가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실제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시는 구원의 신비입니다(로마서 6:3-5).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담당되었고,
그분의 의와 생명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집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삶의 적용 : 우리의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문제입니까? 경제입니까? 세상의 성공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눈이 문제를 보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눈이 세상을 보면 욕심이 커집니다.
그러나 눈이 예수님을 보면 믿음이 커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파도를 보는 순간 빠지기 시작했습니다(마태복음 14:29-31)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문제에서 그리스도께로 돌려놓습니다.
5.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거룩함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이제 복음의 능력을 선포한 후 곧바로 인간의 현실을 보여 줍니다.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로마서 1:18)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불편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를 서로 반대되는 성품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위험한 길을 막듯이, 하나님도 죄가 인간을 파괴하기 때문에 진노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가 동시에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고, 동시에 죄인을 포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이사야 53:5)
십자가는 사랑 없는 심판도 아니고, 거룩함 없는 사랑도 아닙니다.
6.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를 단순히 행동으로 생각합니다.
거짓말, 도둑질, 간음, 살인 그러나 바울은 죄의 뿌리를 훨씬 깊게 설명합니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로마서 1:21)
이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예배를 잃어버립니다.
예배를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리는 반드시 우상이 차지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예배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을 예배하느냐입니다.
돈을 예배하면 탐욕의 노예가 됩니다. 권력을 예배하면 교만의 노예가 됩니다.
성공을 예배하면 불안의 노예가 됩니다. 자기를 예배하면 결국 절망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다." (로마서 1:25)
오늘날의 우상은 돌이나 나무가 아닙니다.
성공, 물질, 쾌락, 자아, 기술, 명예, 심지어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죄란 결국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
7.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
본문에서 가장 무서운 표현이 세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셨다." (로마서 1:24, 26, 28)
많은 사람은 이것을 적극적인 심판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거두시는 심판입니다.
이는 마치 절벽 위 자동차를 붙잡고 있는 브레이크를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강제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인간이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할 때, 그 선택의 결과를 그대로 허용하십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붙들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적만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은혜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만물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붙드시며." (히브리서 1:3)
우리가 오늘 믿음을 지키는 것도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붙드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삶입니다.
8. 죄는 반드시 중독을 낳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반드시 다른 것의 종이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한복음 8:34)
현대 사회는 자유를 외치지만 실상은 수많은 중독 속에 살아갑니다.
디지털 중독, 도박, 음란, 알코올, 마약, 소비, 인정 욕구, SNS, 성과주의, 권력, 쾌락…. 겉으로는 자유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점점 더 묶여 갑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죄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노예로 만듭니다.
9. 복음은 죄책감이 아니라 자유를 줍니다.
사탄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첫째는 죄를 짓게 합니다.
둘째는 죄책감 속에 계속 살게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정죄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제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10-11)
복음은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해결합니다.
십자가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한 심리치료가 아니라, 죄 자체를 해결한 하나님의 구속 사건입니다.
10. 말씀을 선택하는 시대가 아니라 말씀에 선택받는 시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원하는 설교만 골라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설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듣고 싶은 말씀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가?"
디모데후서 4장 3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복음은 내 취향에 맞추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복음은 나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능력입니다.
참된 제자는 듣기 좋은 말씀만이 아니라, 회개하게 하는 말씀도 기쁨으로 받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삶의 적용 : 우리는 무엇에 붙들려 살아가는가?
로마서 1장은 단지 이방인의 죄를 고발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가?
나는 세상의 성공과 인정이 복음보다 앞서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내 욕심을 더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시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회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새 생명이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절망을 보여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 절망의 한가운데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11. 로마서 1장의 결론은 '죄'가 아니라 '복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1장을 읽으면 죄의 목록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의도는 죄를 크게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인간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말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가를 보여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죄가 아무리 커도 십자가는 더 큽니다.
사탄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예수님의 부활은 더 강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복음은 결코 빛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장을 시작하면서 복음을 이야기하고, 중간에는 죄를 이야기하며,
마지막에는 다시 의와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죄는 배경입니다. 복음이 주인공입니다.
1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눈이 열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경제를 보면 절망합니다. 세상을 보면 두려워합니다. 뉴스를 보면 불안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고린도후서 4:18)
복음은 환경을 먼저 바꾸지 않습니다. 시선을 먼저 바꿉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 군대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자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습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열왕기하 6:17)
환경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믿음은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눈이 변하는 것입니다.
13.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바울은 "믿어 순종하게 한다." (로마서 1:5) 라고 말합니다.
참된 믿음은 머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구원의 열매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와 복음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14.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바울은 여러 번 로마로 가려 했지만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막힌 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문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닙니다. 준비입니다. 홍해도 막혀 있었습니다. 요단강도 막혀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도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자 홍해는 갈라졌고, 요단은 멈추었으며, 여리고는 무너졌습니다.
닫힌 문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더 좋은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15.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많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역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는가?"
교회의 중심은 사람이 아닙니다. 목회자도 아닙니다. 건물도 아닙니다. 행사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복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가져도 길을 잃습니다.
복음을 붙들면 아무것도 없어도 길을 찾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선포합니다.
첫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둘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셋째, 복음은 우리의 눈을 열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세상은 돈이 힘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이 힘이라고 말합니다. 지식이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복음을 붙드는 사람은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눈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중심에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복음을 붙드십시오. 십자가를 자랑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를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이 시대가 다시 복음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복음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영성 깊은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로마서를 통하여 다시 한번 복음의 영광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복음보다 세상을 바라보았고, 예수님보다 문제를 크게 보았으며, 믿음보다 두려움을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흐려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다메섹 길에서 사도 바울의 눈을 열어 주셨던 것처럼, 엘리사의 사환에게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심령도 성령께서 밝혀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복음이 단지 우리가 아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의 교만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게 하시며, 성령의 역사가 우리의 연약함을 담대한 믿음으로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모든 우상을 드러내어 주옵소서.
돈보다, 성공보다, 인정받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의 중심이 오직 그리스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이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가 십자가를 가장 선명하게 전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며, 이 민족과
열방 가운데 복음의 빛을 비추는 교회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복음에 빚진 자로 살아가게 하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길이 막혀도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게 하시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게 하시며, 어떤 형편에서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담대히 선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지막 날까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안내해드립니다. 더 편하고 유익하게 콘텐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EC%97%A0%EB%A7%88%EC%98%A4%EC%A7%80%EC%8B%9D%EB%B0%9C%EC%A0%84%EC%8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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